양보가 항상 정답은 아니었다
며칠 전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조금 마음에 남는 일이 있었다.
놀이터에는 초록색 그네와 주황색 그네, 두 개가 있었다.
아이는 초록색 그네를 타고 싶었던 모양이다.
그런데 마침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초록색 그네를 타고 있었다.
나는 아이에게 말했다.
“언니 타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렸다가 나중에 타자.”
아이는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곳으로 가서 놀았다.
잠시 후 언니가 그네에서 내려와 다른 곳에서 놀기 시작했다.
그러자 아이는 다시 초록색 그네로 향했다.
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다시 찾아왔다.
“내꺼야.”
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당황했다.
사실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.
그네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.
하지만 괜히 아이들끼리 실랑이가 생기고, 부모끼리 얼굴을 붉히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.
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.
“언니가 타고 싶대. 다른 데 가서 놀자.”
그러자 아이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.
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
‘잠깐만. 왜 내가 우리 아이에게만 양보하라고 하고 있지?’
아이는 이미 한 번 기다렸다.
언니가 그네에서 내려온 뒤 다시 타려고 했을 뿐이었다.
그리고 그네는 공공시설물이었다.
누군가 먼저 탔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.
아이에게 양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,
그보다 먼저 서로 공평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.
다행히 상대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었다.
언니에게 동생이 먼저 타려고 했으니 나오라고 이야기했고,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타이르셨다.
“놀이터에 있는 그네는 누구의 것도 아니야. 다 같이 사용하는 거야.”
그 말을 듣는데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.
나는 아이에게 양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.
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
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주장하지 않는 것,
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공평하게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.
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괜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.
엄마가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.
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르쳐준다고 생각하지만,
이렇게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오히려 내가 배우는 순간이 더 많다.
오늘도 하나 배워간다.
양보가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것.
그리고 내 아이의 마음도 공평하게 지켜줘야 한다는 것.
